EN

항구도시 부산은 오래전부터 바다를 통해 세계와 만나왔다. 사람과 물자가 오가고, 이주와 정착이 이어지는 동안 서로 다른 삶과 문화가 육지와 바다를 건너 이곳에서 만나고 교차해왔다. 바다는 부산을 세계와 나누는 경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지역과 사람을 이어온 통로였다. 2002년 출범한 부산비엔날레는 개최 도시의 이러한 역사와 정체성을 바탕으로 지역과 세계를 연결해 왔다.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비엔날레가 열리며 동시대의 중요한 의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갈수록 유사한 담론과 전시 형식이 반복되고 있다. 예술은 복잡한 세계를 하나의 해답으로 단순화하기보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차이와 모순을 드러내고, 익숙한 세계를 낯선 감각으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제는 얼마나 많은 국가와 작가가 참여하는가보다, 세계의 문제가 한 도시의 역사와 삶 속에서 어떻게 새롭게 읽히고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는가를 고민할 때이다.

2026부산비엔날레는 전 세계 69명/팀의 기획자가 지원한 국제 공모와 두 차례의 심사를 거쳐 에블린 사이먼스와 아말 칼라프를 공동 전시감독으로 선정하였다. 두 감독은 《불협하는 합창(Dissident Chorus)》이라는 주제 아래 쉽게 들리지 않았던 소리와 기록되지 않은 기억에 주목한다. 몸과 소리, 노래와 기억을 통해 서로 다른 존재들이 차이를 지우지 않은 채 관계를 맺고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한다. 서로 다른 시선과 경험이 만나 하나의 전시를 만들어가는 두 감독과 작가들의 협업 방식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두 감독의 접근은 서로 다르면서도 교차한다. 아말 칼라프는 권력과 제도가 만들어온 언어와 기록의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차이를 지우지 않는 관계와 연대의 가능성을 질문한다. 에블린 사이먼스는 노래와 춤, 의례와 퍼포먼스, 시위 등 몸과 소리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실천에 주목하며, 부산의 항구와 피란, 삶과 노동, 민주화의 기억을 하나의 ‘소리의 역사’로 읽는다.

몸은 공식적인 기록이 담아내지 못한 기억을 간직한 살아 있는 아카이브가 된다. 서로 다른 소리들이 충돌하고 울려 퍼지지만 이 합창에는 지휘자가 없다. 여기서 듣는다는 것은 서로 다른 소리를 하나의 화음으로 통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 속에서 아직 들리지 않았던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갈등과 분열, 저항의 소리까지 함께 존재하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두 감독이 제안하는 공동체의 모습일 것이다.

22개국 46작가/팀(49명)이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부산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옛 선박 수리창고를 개조한 스페이스 원지와 (구)부산남고등학교 부지로 이어진다. 이 장소들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항구도시 부산이 지나온 산업과 노동, 교육과 생활의 시간을 간직한 공간이다. 세계 각지에서 출발한 예술가들의 감각과 기억은 서로 다른 시간이 축적된 이 장소들을 횡단하며 부산의 역사와 만나고, 다시 세계를 향해 새로운 이야기와 질문을 만들어낸다.

세계의 예술가들이 부산의 역사와 장소를 만날 때 국제성과 지역성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조건이 될 수 있다. 지역성은 세계적인 담론에 대비되는 주변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세계를 다르게 이해하고 해석하게 하는 하나의 시선이 될 수 있다. 비엔날레가 지구촌 담론을 일방적으로 이식하기보다 지역의 경험을 통해 새롭게 번역하고, 행사가 끝난 뒤에도 새로운 관계와 질문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부산비엔날레 역시 완성된 답을 제시하기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고 듣고 질문하는 열린 장이기를 바란다. 바다를 건너온 서로 다른 소리들이 부산에서 만나고 교차하며 다시 세계로 퍼져나가듯, 부산이 세계의 다양한 소리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역사와 기억으로 다시 세계에 말을 거는 도시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 준 (사)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